상식모음


경제파산과 양심파산 9/17/2012
눈 한번 뜨고 감는 것이 생사와 같다는 불가의 말씀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복잡다난했던 2011년도 불과 나흘만을 남겨두고 있는 지금 올 한 해동안 겪었던 많은 일들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주 오래 전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을 그 일을 겪을 당시에는 왜 그렇게 죽을 만큼 힘들고 괴로웠던 건지.

경기회복의 소식이 곳곳에서 들여오지만 여전히 체감경기는 차디찬 ‘겨울’이다. 봄이 온다고, 꼭 올거라고, 봄옷을 준비하라고 주변에서 말하지만 아직도 입고 있는 겨울옷을 벗기가 너무 춥다. 몸만 추운게 아니라 마음은 더 꽁꽁 얼어버려 내쉬는 한숨으로 눈물을 대신한다. 미국 이민을 오면서 그 누구도 파산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지 않았어도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 부지런함으로 노력한 만큼 ‘먹고 살기’는 가능하다고 여겼을 터이다. 그런 소박한 꿈들은 사실상 실현됐었다. 열심히 피땀흘려 노력한 댓가로 집도 사고 자녀들 교육시키고 그렇게 미국사회의 일원으로써 당당히 한 몫을 담당했었다.

하지만 누구도 살면서 겪게 되는 ‘날벼락’을 피할 수는 없다. 그냥 벼락도 아니고 ‘앞에 날’을 붙여 ‘날벼락’, 즉 뜻밖의 벼락를 온몸으로 맞아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가고 있는 한인들이 많다. ‘열심히 정직하게 살았는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나쁜 사람들의 배는 더 불러지고 있는데 왜 힘없고 성실한 소시민한테만 이런 일이 닥치는 지, 평생 배운거라곤 해온 일이라곤 이 사업 밖에 없는데 이걸 닫으면 앞으로는 뭘로 먹고 살아야 하는지’ 수많은 왜(why)와 어떻게(how) 사이에게 하루를 보낸다.

몇년 전에 신문에서 ‘왜라고 묻지 않겠어요’ 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인생에서 닥치는 수많은 ‘날벼락’에 왜라고 묻지 않고 ‘왜 내가 아니어야하나(why not me) ‘로 거꾸로 물어보며 ‘날벼락’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는 내용으로 기억된다. 그당시 수없이 겪는 날벼락에 ‘why me’를 외치며 괴로워하던 마음을 쉬게 해줬던 고마운 글이다.

파산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쉬운 일은 아니다. 상담시 파산 손님들의 눈물을 보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나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정직하게 피땀흘려 열심히 살아오신 그분들의 눈물이, 그 눈물이 고인 눈가의 주름이 깊어 보인다. 어쩔수 없이 ‘경제파산’은 하더라도 그것이 곧 ‘양심파산’은 아니기에 그렇게 힘든시간을 보낸 모든 분들이2012년 임진년 새해에는 오랜 잠에서 깨어난 흑룡처럼 날마다 희망찬 새출발이 되기를 소망하는 바이다.